안녕하세요?
비원의 울타리 정보 짱비원 입니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주 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서 만개했었던 벚꽃의 축제도 불과 한차례 내린 봄비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한풀 꺾여 버리고 4월도 어느듯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다시 주말을 맞았지만 몇일전부터 전국적으로 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틀리지 않고 오전9시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렇게 많이 내린것 같지도 않은데 점심시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잦아들어 일단은 멈춘것 같네요.
제법 또 선선해 졌지만 모처럼 나들이를 계획하고 계신분들도 많을텐데 암튼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몇일 앞으로 다가온 4.19 혁명 기념일에 대하여 간단하고 알기 쉽게 포스팅을 해 보고자 합니다.
1. 4.19 혁명이란?
1960년 4월 19일 자유당의 반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학생과 시민들의 연합으로 발생된 민주주의 혁명 운동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제1공화국이 붕괴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2. 4.19 혁명의원인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속에서 1960년 3월 15일 전국적으로 치루어졌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학생과 시민들의 합세로 선거당일 경남마산에서 발생되었는데 정권을 잡고 있던 자유당 정부가 무력과 폭력으로 강제 진압에 나사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공산당으로 몰려 고문을 당했는가 하면, 시위도중 실종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군이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로 발견 되면서 분개한 시민들의 2차 시위가 또다시 발생되었습니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3천여명의 학생들이 "진정한 민주 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 의사당까지 진출하였으며,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일부 학생들이 괴 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었는데 이에 분노한 전국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다음날인 4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일제히 폭팔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유당의 이승만 독재 정권은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강제 진압하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탄압 하였으며, 비상 계엄령까지 선포하게 되었는데, 4월 25일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만행을 더이상 보고만 있을수 없었던 서울시내 각대학교의 교수단 300여명이 선언문을 발표하고 학생들과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다음날인 4월 26일까지 서울시내를 가득메운 대규모 시위대는 정권의 강제 무력 진압에도 굴복하지 않은채 완강하게 투쟁하여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3. 4.19 혁명의 결과
4월 26일 아침 김정렬 국방부 장관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하루전인 4월 25일 입각한 허정 외무부 장관등이 강경하게 이승만 대통령께 하야 할것을 진언하고 권유 하였으며, 송요찬 계엄 사령관이 시민대표와 설송웅등 학생대표 5명을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을 하도록 주선하고, 고려대 유일나가 "각하께서 하야 하시는 길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 입니다"라고 직었했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뭘 하라고?" 라면서 알아듣지 못하자 옆에 있던 곽영주가 "step down" 이라고 속삭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날더러 저 하와이나 외국에 가서 살란 말인가?" 라고 물었고 유일나가 "국민이 원합니다"라고 대답 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시민대표와 학생대표와의 면담결과를 받아들여 하야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박찬일 비서관을 불러 성명서를 쓸것을 지시 하였고 10시 20분경 드디어 시민들과 학생들의 요구에 굴복하여 사임 할 것을 발표 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서
"나는 해방후 본국에 돌아와서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한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우리 사랑하는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해서 우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가지 결심을 요구했다하니 내가 아래서 말하는 바데로 할 것이며 내가 한가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동포들이 지금도 삼팔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코사 공산군이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1.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것"이다. 2.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 하였다. 3. 선거로 인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기 위해 이미 이기붕 의장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결정하였다. 4.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하면 내각 책임제 개헌을 할 것'''이다. -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서명, 1960.4.26. |
이렇게 학생들과 시민들이 10만명 이상 4.19혁명 시위대에 가담하였으며,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제1공화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이후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을 하게 되며, 1960년 4월 27일~1960년 6월 15일 까지 수석국무위원인 허정이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게 되었으며, 1960년 6월 15일 제2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제3차 헌법의 부칙에 따라 당시 수석국무위원겸 외무부 장관이던 허정은 국무총리겸 외무부 장관으로 자동 취임하였다가 1960년 8월 19일 장면이 국무총리로 선출되면서 퇴임하였고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일하게 대통령의 지명 없이 국무총리가 되었던 사람 입니다.
4.제2 공화국의 탄생
4.19 혁명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정권의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3차 개헌을 통하여 같은해 6월 15일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그후 1961년 5월 18일까지 11개월간 정부 수립후 가장 짧은 존속기간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간선제로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불과 했으며, 행정부 수반인 제7대 장면 국무총리가 실질적인 국정을 이끌었으며, 박정희 소장이 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설립된 국가재건 최고회의에 의해 붕괴되고 의원내각제 형태의 군사독재 내각이 들어서게 되며 서서히 제3공화국의 서막을 알리게 됩니다.
더이상 4.19 혁명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의 포스팅은 무리라고 생각되며, 또 다른 기념일과 연관하여 포스팅할 기회가 주어 진다면 그때 다시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5. 4.19 혁명 기념일 행사계획
제63주년 4.19 혁명 기념일 행사가 "자유의 꽃이 피련다" 라는 주제로 2023. 4. 19. (수) 10:30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 4.19 민주묘지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거행 된다고 합니다.
관심 있고 시간 있으신 분들은 한번 참석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생각되며, 혹 TV를 통하여 기념식 행사중계 방송이라도 시청하시게 된다면 묵념 시간이라도 같이 동참을 해 주시면 좋지 않을까 사료 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료출처 : 지식백과 및 나무위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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