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의 울타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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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기념일 정보

한글날을 맞이하며~~

짱비원 2023. 10. 8. 14:57

안녕하세요?

비원의 울타리 정보 짱비원 입니다.

3일간의 황금연휴 이틀째인 오늘은 재향군인의 날 기념일이며, 또한 24절기 중의 하나인 한로 인데, 하루도 내 마음데로 쉴수가 없는 입장이다보니 편의점 문은 열었으나 가끔 띠엄띠엄 들어오는 손님들로 한산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네요.

너무 많은 스트레스 탓인지 갑작스런 시력저하로 한동안 등한시 해왔었던 블로그에 한가지씩 글을 열심히 올려보고자 이곳 저곳 참고자료를 뒤적여 하루 앞으로 다가온 한글날에 대하여  포스팅을 해 보고 있습니다.

 

1. 한글날의 의미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인 오늘날의 한글 "훈민정음"을 창제한 날을 기념하고, 순수 우리 글자인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기념일 이자 국경일이며 공휴일로 매년 10월 9일 입니다.

 

(한글날)

 

2. 한글날의 지정 배경

최초의 한글날은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되었던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으며,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이 되었고,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 되었습니다.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3. 한글날의 유래와 변천사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25년(서기 1443년)에 완성하여 3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세종 28년(서기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되었으며, 우리의 한글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주도아래 창의적이고, 지극히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만들어 낸 문자로 지구상의 어느 문자와도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그 우수성을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합니다.

 

한글의 창제로 그동안 남의 글자인 한자에 우리말을 중국말 문법에 맞추어 쓰던 불편함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문화, 경제, 정치 등 각 분야에 걸친 두루 발전을 이루어 세계 유수한 나라들과 나란히 어깨를 견주게 되었는데, 이처럼 한글날은 우리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공로를 기리는 날 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6년 한글날을 제정하게 되었으며, 당시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였던 오늘날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을 가갸날이라 하여, 서울 식도원(食道園)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시초인데, 한글이 반포된 지 8회갑인 480년이 되던 해 였습니다.


그 시기는 일제에 국권을 빼앗겨 억압되고 위축되어 있던 때로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한글날을 제정 기념하기로 했었던 것이며,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 28년(서기1446년) 9월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라고 한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며, 이름을 가갸날이라 한 것은 그때까지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한글을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였기 때문 입니다.

 

한글은 언문,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러 오던 훈민정음을 1910년대에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이며, 그때까지만 해도 그 쓰임이 보편화되지 않았습니다.

1928년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31년 그동안 음력으로 기념해오던 한글날을 양력으로 고치고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하였지만, 환산 방법에 의문이 생겨 1446년의 음력 9월 29일을 당시 우리나라에서 쓰던 그레고리력으로 다시 환산한 결과 10월 28일과 일치하여 이날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가졌던 것 입니다.

 

그후,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 되었으며, 서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정인지가 썼다고 기록되어 있어 훈민정음(한글)을 반포한 날이 좀더 명확하게 밝혀졌지만, 이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여러 가지로 통제가 심하였던 까닭에 전혀 기념을 할 사정이 못 되었다 하네요.

 

(훈민정음 해례본)

 

4. 한글날 기념행사

1945년 광복이후 한글날을 양력 10월 9일로 확정 하였으며, ‘정통 11년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그것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로 정한 것이며, 특히 일제강점기의 한글날 기념 행사는 민족주의 국어학자를 비롯한 소수 유지들의 모임으로 이루어 졌었으나, 1946년 한글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여 거국적인 기념 행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때부터 한글날 행사가 비로소 전국적인 행사로 바뀌어 매년 대규모의 기념식을 거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글날은 1970년 공포된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으로 공식 공휴일이 되었으나, 한동안 법정 공휴일의 지위를 잃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는데, 1990년 휴일이 많아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경제 단체의 문제 제기로, 법정공휴일 축소 문제가 논의되었고, 그해 8월 국무회의에서 한글날 과 국군의 날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하여,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되었으나, 한글 관련 단체들의 꾸준한 국경일 제지정 운동의 결과로 2005년 12월 29일 국회에서 ‘국경일에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2006년부터 다시 한글날이 국경일로 변경 되었습니다.

한글날 기념 행사는 광복 이전부터 한글학회가 주관해 왔으나, 1957년부터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게 되었고, 1981년에는 서울시, 1982년부터는 현재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날은 정부 주관으로 삼부(三府) 요인,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기타 문화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국어 연구와 발전, 해외보급에 공로 큰 이들에게 훈포장·표창을 하는 한편, 한글을 기리는 문화 공연, 전시회 같은 행사와 별도로 민간 한글 관련 단체에서 세종대왕 동상에 꽃바치기, 국어학 학술대회 같은 행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5. 한글의 연구와 계몽운동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하기까지 우리의 말은 있었으나 그것을 표현할 글자는 없었고, 말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으며, 말은 말을 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것을 들을 수가 없는데,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글자이며, 말을 글자로 적으면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나,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도 지식과 정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수가 있고, 글자가 없으면 지식의 축적,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한자를 빌어다 변형하여 쓰거나 그대로 사용하다보니, 많이 불편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각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적을 수가 없어 일상생활은 물론 문화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었는데,
이러한 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종대왕 같은 성군(聖君)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일반 백성들이 널리 사용도록 하였으나 문화를 주도하던 조선의 사대부 계층이 오랜 한자, 한문 생활에 젖어 한글 쓰기를 거부하였으며, 연산군(燕山君) 때 한글 을 탄압하면서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자로 전락 하였었습니다.

 

그후,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들이 한글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고, 개화기에는 황제의 칙명으로 한글에 국문(國文)으로서의 지위를 주었으며, 이때부터 박영효,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과 같은 선각자들과, 주시경과 같은 계몽적 국어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글은 공문서, 각종 문서, 신문, 잡지등에 널리 쓰이게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도 민중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한글 맞춤법을 만들었으며, 국어 문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말 우리말의 말살 정책으로 큰 위기를 맞았었으나, 광복과 더불어 우리말과 한글을 마음 놓고 가르치고 배우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각자인 박영효,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대통령과 주시경 국어학자)

 

6. 한글의 우수성과 문화생활 향상

한글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글자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전인 광복 직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부끄러울 정도로 문맹률이 지극히 높았으며, 한자·한문은 배우기가 어려워 보편화되지 못하였고, 한글은 배우기는 쉬웠으나 한글을 아는 것 만으로는 밖에 나가 행세를 할 수가 없었으므로, 가르치지를 않아서 아는 사람이 적었던 까닭 입니다.

 

이처럼 글을 모르고는 지식을 습득할 수가 없었고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의 향상, 문화의 향상을 도모할 수 없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의 학문적 발전을 고루 이루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이르러 일정한 국제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에게 한글이라는 아주 특별한 글자가 있어 동력원이 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으며,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여 한글의 창제와 그 우수성을 기리고, 그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며, 한글과 국어의 발전을 다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라 하겠습니다.

(제577돌 한글날)

 

7. 포스팅 후기

간단하다고 생각했었던 한글날에 대하여 막상 포스팅을 하다보니 잘 모르고 있었던 부분들이 너무도 많아 이번 기회를 통하여 여러모로 배우게 되었으며, 나름데로 자료를 취합 포스팅을 해 보았으나 부족한점이 많으리라 사료 됩니다.

미약하나마 한글날에 대한 정보를 찾으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남은 한글날 국경일 유쾌하고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 합니다.

(짱비원)